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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몇 군데 둘러보다 그냥 포기하는 거죠.”

 

오는 11월 전세 계약 만기를 앞둔 김현정씨(39·서울 광진구 화양동)는 내년 아이의 초등학교 배정에 맞춰 인근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다 그만뒀다. 지난 4년 사이 인근 아파트 보증금이 평균 3억원 이상 올랐지만, 김씨가 대출 없이 추가로 마련할 수 있는 돈은 1억원이 전부다.

 

비슷한 시기, 현재 살고 있는 빌라 집주인은 전세보증금 3억3000만원의 일부를 월세로 돌리고 싶다며 보증금 3억원에 월세 70만원을 제시했다. 월세 지출이라도 아끼고 싶었던 김씨에게는 이 역시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김씨는 “주인 할머니가 재작년에 대출을 받아 인근 신축 오피스텔을 구입했는데 대출이자가 오르면서 당장 매달 돈이 필요해 월세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보증금을 좀 더 드릴 테니 월세를 좀 낮춰달라고 주인에게 부탁해보고, 주변에 좀 더 오래된 빌라도 찾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대한 빚 없이 전세로 살다가, 내집 마련을 목표로 했던 김씨는 점점 내집 마련의 길이 멀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 서울 상반기 월세 거래 4만건 돌파

 

대출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급등하는 전세자금 대출금리를 감당하기 부담스럽고, 집주인 입장에서도 예·적금 이자보다 월세를 받는 게 더 매력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5년간 집값 상승과 함께 큰 폭으로 오른 전셋값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던 세입자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1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1~6월 서울에서 월세를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량은 4만2087건으로, 전체 전·월세 거래의 39.9%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3만4955건)보다 20.4% 늘었고, 2011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상반기 기준으로 가장 많았다.

 

보증금을 조금 끼고 월세를 많이 받는 ‘준월세’의 비중도 점차 커지고 있다. 통상 ‘반전세’는 보증금 대비 월세 비중에 따라 ‘준전세’와 ‘준월세’로 구분한다. 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치를 초과하면 ‘준전세’로, 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치보다 적으면 ‘준월세’로 분류한다.

 

올해 상반기(1~6월) 전체 전·월세 거래에서 준월세(2만2485건) 비중은 21.3%로, 준전세(17.0%)를 넘어섰다. 지난해 상반기(17.6%)보다도 준월세 비중이 늘어난 것이다. 전세에서 월세로, 그중에서도 월세 금액이 더 많은 ‘준월세’ 비중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은행권의 전세자금 최고 금리가 연 5%대를 넘어서면서 전세대출 이자보다 월세가 더 낮은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임차인으로서는 자신에게 유리한 쪽을 택할 수밖에 없고 자발적으로 월세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A아파트(61㎡)에 거주하는 박모씨(44)는 지난달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옆 동으로 이사를 하면서 전세를 준월세로 돌렸다. 중도상환수수료를 내더라도 대출금을 조기에 갚고 월세를 내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월세를 150만원씩이나 내야 하는 건가 싶다가도 매달 은행에 200만원씩 갚아가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었다”면서 “지하철역에 좀 더 가까운 단지로 옮겨서 거주 환경은 훨씬 나아졌다”고 말했다.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집값이 낮아 갭투자가 용이한 지방의 월세 거래량은 이미 지난 4월 이후 전세를 추월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5월 전국의 전·월세 거래는 총 40만4036건으로, 전월(25만8318건) 대비 56.4%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월세가 59.5%(24만321건)를 차지해 전세 거래량(16만3715건·40.5%)을 크게 앞섰다.

 

부동산 전문가들도 전세의 월세화는 더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물가 대응을 위해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연 3%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박씨처럼 추가 전세대출을 일으켜 보증금을 마련하기보다 월세를 더 내는 현상이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추후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면 집주인과 한 번 계약을 맺어 2년 동안 지불금액이 일정한 월세 선택이 훨씬 낫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일반적으로 급여의 소득세율이 낮을수록 전세대출이자 납입분에 대한 연말 소득공제를 받는 것보다 월세로 지출하고 세액공제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전세의 월세화가 확대될수록 내집 마련은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세입자가 월세를 선택하면 당장의 전세대출 이자 부담은 덜 수 있지만 월세로 나가는 주거비를 감안하면 목돈을 저축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발표된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3월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은 18.4다. 중간소득 가구(3분위)가 중간가격 주택(3분위)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모아도 18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PIR(Price to income ratio)은 소득 대비 집값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수로, 주택을 구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소득의 절반을 저축한다고 가정하면 약 36년을 꼬박 모아야 서울의 중위가격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서울의 평균 월세는 125만원이다. 매달 월세 125만원을 내면서 소득의 절반 이상을 모아 내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 15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주택종합 월세는 상반기(1~6월)에 0.90% 올라 지난해 같은 기간(1.03%)에 이어 상승률이 역대 2번째로 높았다. 지난달 수도권 월세는 0.18% 올라 전월(0.17%) 대비 상승폭이 소폭 확대됐다. 서울은 0.06% 상승했다. 반면 전세가격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의 월세화는 전세금을 대출로 충당하는 사람들이 대출이자보다 월세를 선호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전·월세 시장에서 월세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 전세자금 마련 여력이 있는 사람도 월세를 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 내집 마련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https://www.khan.co.kr/economy/real_estate/article/202207172134005